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카하시 루미코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20181012_181658.jpg|width=100%]] }}} || || '''{{{#fff 데뷔작 [[시끌별 녀석들|{{{#fff 시끌별 녀석들}}}]]의 [[히로인|{{{#fff 히로인}}}]]이자 [[모에|{{{#fff 모에}}}]]계의 원조 [[라무|{{{#fff 라무}}}]]의 동상과 함께 찍은 사진}}}''' || [[니가타]]현에서 3대째 [[산부인과]]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 집안[* [[할아버지]], [[아버지]], 두 [[오빠]]가 전부 [[의사]]다.]의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며, 이미 20대에 만화가로 대성을 했기 때문에 만화가 이외에 다른 일을 (심지어 [[아르바이트]]도)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. 사실 이러한 점은 그녀의 만화에서도 어느 정도 투영되는데 일반적인 [[회사]]와 [[샐러리맨]]의 일상은 그녀 작품에 거의 안 나오며 나온다 해도 비중이 크지 않다.[* 대표적으로 메종일각에서도 일견 샐러리맨처럼 보이는 [[요츠야씨]]의 경우도 직업 불명으로 묘사하고 그가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그리지 않았다.] 그나마 애니메이션에서 샐러리맨들의 일상과 애환이 종종 묘사되기는 하는데,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진들이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. 애니메이션 제작 단편집 《거울이 왔다》에 수록된 타카하시 루미코와 [[아다치 미츠루]]의 합동단편 '마이 스위트 선데이'에 의하면,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려서 절기 때마다 그림을 그려서 루미코에게 주곤 했고, 따라서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져 영화를 보고 인상깊은 장면을 집안에 낙서하곤 했다고 한다. 10살 때 [[이케가미 료이치]]의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만화를 [[소년 선데이]]에 투고하여 1차 심사 정도는 통과하기도 했다고 한다. 이후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만화동아리를 만들어 만화를 그리며 다시 한번 [[소년 매거진]]에 투고를 시도하나 탈락하고 이후로 니혼여자대학교 [[사학과]]에 입학 후에도[*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일본의 역사나 전통문화를 자주 소재로 삼으며, 작품 곳곳에 세세한 소품이나 연출로 전통물을 활용한다. ] [[소년 점프]] 등 여러 곳에 만화의 투고를 시도했다.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에 [[코이케 카즈오]]가 주관하던 만화가 양성 학교인 '극화촌숙'에서 반년 동안 연수를 하게 되고[* 여기서 그토록 동경하던 이케가미 료이치를 처음 만나봤다 한다. 작가의 말로는 멀리서만 봤다고는 하지만.] 이후 다시 만화를 투고한 [[소년 선데이]]에서 추천을 받아 [[우메즈 카즈오]]의 [[어시스턴트]]로 일하게 되면서 만화가의 길을 걷게된다. [[시끌별 녀석들]]로 대표되는 그림체는 [[나가이 고]]를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. [[http://egloos.zum.com/kabuto/v/4805169|#]] 이후 루미코는 대학 졸업 후 프로로 데뷔하게 되었다. 당시 편집장은 타카하시 루미코를 "대단한 녀석이 왔다, [[천재]]"라고 말했다고 하며, 그야말로 혜성처럼 데뷔했다. 대학 출신으로 첫 연재가 즉시 히트라고하는 것은 극히 드문 예라고.[[https://natalie.mu/comic/pp/heros03/page/3|#]] 당연히 집안에서는 반대했다고 한다. 당시 일본의 취업시장에서는 남들 취직하는 나이 대에 취업 안 하면 이후 취업이 힘들기 때문.[* 당시 일본의 구인배율을 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[[오일쇼크]]의 여파로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업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. 물론 정규직 채용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덜했기는 했지만. 취업시장이 굉장히 활발해진 2010년대 중후반인 지금도 일본인들은 남들이 할때 안하면 이상하고 도태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.] 정식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'''케모 코비루(けも・こびる)'''라는 필명으로 동인활동을 한 적이 있다. ([[:파일:에이스를 노려라(다카하시 루미코).jpg|그 당시의 그림]]) 1978년부터 데뷔작 《[[시끌별 녀석들]]》을, 1981년부터는 《[[메종일각]]》을 연재하면서 유명 만화가가 되었고 1987년에는 《[[란마 1/2]]》을 연재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. 그리고 이후 1996년에는 《[[이누야샤]]》의 연재를 시작했고 연속으로 히트를 친다. [[러브 코미디]] 작가가 배틀물로도 히트친 케이스는 거의 없다.[* 참고로 이누야샤는 원나블보다 먼저 연재된 작품이다.] 2009년부터 2017년까지 [[경계의 린네]]를 연재, 전작들보다는 덜 히트했으나 600만부 판매에 애니메이션도 3기까지 나와 시청률도 중박을 거뒀다. 2019년부터는 만화 [[MAO]]를 연재 중이다. 60대의 나이에 여전히 현역으로 주간 연재를 하는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. 2020년에는 이누야샤의 후속작 [[반요 야샤히메(애니메이션 1기)|반요 야샤히메]]가 발표됐다. 메인 캐릭터의 디자인을 담당했다고만 알려지는 바람에 디자인만 담당한다고 알려졌으나 반요 야샤히메 제작에 직접적으로 많은 관여를 했다고 밝혀졌다. 애니메이션 제작진과 주기적으로 각본 회의를 하는 중이며, 각본 감수와 주연 3인방의 캐릭터 디자인 및 설정 확립도 그녀의 손을 전부 거쳤다고 한다. 별명이 일[[귀신]](仕事の鬼). 루미코 작가가 왜 일본 제일의 만화가 5명 안에 드는지 잘 보여주는 별명. 《시끌별 녀석들》의 원고를 27시간만에 완성했다든가, 이누야샤 때는 밑그림 시간까지 합해서 한 페이지 당 1시간이었다든가. 젊을 때 데뷔해서 [[휴재]]는 딱 한 번, 《[[란마 1/2]]》 연재 당시 [[맹장염]]으로 휴재한 것이 전부. 특히 《[[시끌별 녀석들]]》과 《[[메종일각]]》 동시연재 때는, 메종일각이 실리던 잡지가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바뀌는 바람에, 한 작품도 힘들다는 '''주간 연재를 2작품'''이나 동시에 하면서도 [[휴재]]가 없었다.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히트를 쳤다. 참고로 루미코는 작업실에 어시스턴트로 [[남자]]를 두지 않는 만화가로도 유명하다. 그 이유는 비록 회사는 아니지만, 만화를 만드는 곳도 엄연히 직장이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, 나머지 여자 [[어시스턴트]]들 사이에서 말썽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. [* 루미코 어시스턴트 출신 만화가로는 [[카미죠 아키미네]]가 있다. 이 경력 때문에 아키미네 쪽에서 성별을 비공개로 했음에도 특정되었을 정도.] 그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 휴재를 단 한 번만 했다는것도 그렇고 일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하의 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묘하게 루미코의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. 인기 만화가지만 2008년의 야후 재팬 인터뷰에 의하면 만일 그녀의 만화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방문해 볼 생각은 없고 만화는 만화 자체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특정 [[생일]]이 없다. 다만 성인 대상 만화에다가 현실성을 추구한 《메종일각》만은 조금 예외. 메종일각 캐릭터들은 태어난 년월을 알 수 있으며, 심지어 [[오토나시 쿄코]]는 [[쓰리 사이즈]]까지 공개되어 있다. 또한 《메종일각》은 루미코 만화 중에서 유일하게 [[사자에상 시공]]이 아니다.[* 엄밀히 말하면 [[이누야샤]]도 원작 기준으로는 사자에상 시공이 아니다. 계절이 잘 표현 안돼서 그러지 [[히구라시 카고메]]의 중학교 졸업 에피소드가 존재하니.] 만화를 게재한 시간이 [[1984년]] 겨울이면, 만화 속 시간도 1984년 겨울이다. [[1985년]]도 소년선데이 인터뷰에 의하면 남자 주인공은 외모, 경제력들이 약하나 그런 남자를 여자 주인공들이 평생 짊어지고 간다는 설정으로 타카하시 본인은 남녀 모두에게 가혹한 설정을 부여한다고 한다.[* 그래서 [[항마력]]이 필요하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. [[사이다]] 전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추천하기 애매하다. 그리고 재밌게 본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읽고 나면 정신적으로 꽤나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다.][* 다만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경제력은 몰라도 외모는 어느저도 받쳐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. [[모로보시 아타루]]마저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 제법 잘생겼다.] 또한 편집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다음에 어떤 만화를 그릴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. 개그 아이디어도 주로 담당자와의 대화 중에 담당자가 웃는 것을 고른다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